이땅에 교회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우리의 구원자를 예배하기 위함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예배가 없는 곳에 예배하는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선교의 존재 이유이듯, 새로운 피조물로써 거듭남의 은혜를 받는 교회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삶의 태도입니다.

 

성도는 전 생애를 통해 하나님을 예배함으로써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인생의 제일된 목적이어야 합니다. 이런면에서 성도의 삶자체가 예배가 되어야 하고(12:1~2),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의식으로서의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전염병으로 인해 함께 모여서 예배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여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흩어져 드릴 수 밖에 없는 현실속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로써의 목적이 퇴색되거나 그것을 방조하는 어떤 생각과 행동은 용인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는 어떠해야 할까요?

 

먼저, 예배는 진리의 이끌림을 받는, 진리안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참 예배입니다.

예배가 타락하게 되면 인간의 감각적 요소들이 진리의 자리를 대신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우리는 어떤 존재인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진리의 각성보다는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달래주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아주 무서운 타락의 징조입니다.

 

우리 심령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행하신 구원의 역사하심이 무엇인지를 알려고하는 열정이 우리를 평생의 예배자로 만드는 힘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진리안에서 드려지는 예배의 중심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선포하는 메세지가 있으며, 그것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인해 삶으로 드리는 예배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또한, 예배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성도된 우리는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삶의 핵심가치로 여겨야 합니다. 이런 인식은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는 두려움에서가 아닌 구원의 은혜를 아는자로써의 기쁨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베푸실 은혜를 갈망하는 자세로 예배를 드리게 합니다.

 

비롯 흩어져서 드리는 예배이지만 다시한번 우리의 예배를 점검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예배를 준비하십니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우리는 언제나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안에서 살리셨다는 것과, 그 은혜로 하나님의 보좌앞에 담대함으로 나아가게 하시는 특권을 누리게 된 존재임을 묵상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은 율법입니다. 그 율법이 위선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은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형언할 수 없는 은혜는 기쁨으로 율법을 지키게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심령을 성령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회복시켜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내가 내 이름을 부르게 하는 곳이면 어디에서든지 내가 너희를 찾아가서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20:24 공동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