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말씀만 전한다고 되나?’

성장하지 않는 교회를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마음에서 던진 이 말이 말씀이면 충분하다고 여기며 달려온 저에게는 때로는 그럼 사람들을 끌 수 있는 획기적인 다른 방법을 간구해야 하나?’하는 타협점을 모색하게 만드는 말로 들리기도 합니다.

 

여러 방법론을 제시하고 그것이 마치 답인것처럼 획기적인 방법을 사모하는 세대속에서도 저는 그래도 말씀이면 충분하다라고 교회를 향해 말하고 싶습니다.

 

복음은 '오직 은혜'라는 말로만 설명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무언가를 더하면 그것은 이미 '오직 은혜'도 아니며, 복음도 아닙니다. 복음이 인간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되는 이유는 복음의 본질이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딱딱하게 굳어진 죄인의 본성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사용하시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지속적인 은혜를 받아야 변합니다.

 

반면, 은혜를 받지 못하면 자기를 사랑하는 자기애의 충만함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열심이 자기의 공로로 가져가는 사람의 죄성의 교활하고 야비함이 드러나는 것도 시간 문제입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 내게서 연단한 금과 흰옷과 안약을 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에게서 출발하지 않는 열심은 모두 자기 공로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한가한 소리가 아닙니다. 절박한 필요입니다.

 

어떻게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은 의지의 호소가 아니라 은혜의 상기라는 말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녹록치 않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겪는 부딛힘이 있을때마다 우리는 아멘이시요 창조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삼위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복음의 은혜를 기억하는 은혜 주시기를 간구합시다. 다른 획기적인 방법이 없습니다.

 

복음의 은혜를 상기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하기 위해 그 사랑에 대한 갈망을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갈망은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매일 아침, 그리고 순간 순간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그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에 나아오십시오. 그 마음으로 엎드려 구하십시오. 아멘이시고 창조의 근본이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히 채우실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가 사는 방법입니다.